1913

 

1913
음력 11월 24일 경상북도 경주시 성건동 186번지에서 부 김임수(金任守), 모 허임순(許任順)사이에 5남매의 막내로 태어만. 아명은 창봉(昌鳳), 호적명은 창귀(昌貴), 자는 시종(始鐘). 맏형은 한학자 김기봉
1928
서울 경신중학교 3학년에 편입학.
1929
위 학교 4학년때 귀향하여 척학서적과 세계문학, 동양고전에 심취
1934
『조선일보』신춘문예에 시 '백로' 입선.
『카톨릭 청년』에서 '망월','바위'등을 발표
1935
『조선중앙일보』신춘문예에 소설 '화랑의 후예'당선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자 경남 사천 다솔사와 합천 해인사에 기거.
1936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산화'가 당선.
상경하여 종로 연건동에 하숙을 정하고 창작활동에 몰두.
'바위','무녀도'등의 소설 발표
1938
소설 '정원','생일','잉여설'발표, 11월 21일 김월계()와 혼인
1942
소설 '소녀','하현'등이 일제 총독부의 검열로 전문 삭제되고, 광명학원이 폐쇄됨. 범부 선생이 구속되고 가택수색을 당하자 절망과 분노를 안은채 해방이 될 때까지 절필

 

1946

1946
한국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고 초대 회장에 피선.
소설 「윤회설」,「미수」,「근친기」,평론「순수문학의 진의」발표
1947
계금주의 민족문학론에 대항, 인간주의 민족문학론을 제항하며 본격 문학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
소설 「혈거부족」,「달」,「지연기」
평론 「민족문학록」,「본격문학과 제 3세계관」등을 발표.
1949
서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국문과 강사 출강.
소설 「유서방」,「형제」,「심정」,「급류」,「검군」등을 발표.
제 2창작집 『황토기』펴냄.
1950
문교부 예술위원, 서울시 문화위원으로 피촉, 소설「인간동의」발표.
한국전쟁 발발.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숨어 지냄

 

 

1955

 

1955
소설「흥남철수」,「밀다원시대」,「서글픈 이야기」,「실존무」등을 발표,
장편소설 「사반의 십자가」를 『현대문학』에 연재
1958
『사반의 십자가』로 예술원 문학부문 작품상 수상,
제 4창작집 『실존무』와 장편 『춘추』를 단행본으로 간행.
1963
장편소설 「해풍」을 『국제신문』에 연재, 제 5창작집 「등신불」간행.
1966
소설 「까치소리」, 「송추에서」, 「바람아 대추야」, 「백설가」등을 발표.
수필집 『자연과 인생』펴냄.
1967
「까치소리」로 3.1 문학상 예술부문 본상 수상
소설 「석노인」, 「감람수풀」발표. 『김동리 대표작선집』 전5권 간행
1968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월간문학』창간. 소설 「꽃피는아침」발표.
중편「극락조」를 『중앙일보』에 연재.
1970
서울시 문화상 문학부문 본상 수상.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1972

1972
장편소설 「삼국기」를 「서울신문」에 연재.
1973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장 취임. 명예문학박사학위 받음.
『한국문학』창간, 회갑기념으로 제 6창작집 『까치소리』,
수필집 『사색과 인생』, 시집 『바위』간행. 12월 회갑기념 서예전을 가짐
1979
중앙대학교 정년퇴임. 장편소설 『을화』영역판 출간.
소설「우물속의 얼굴」,「만자동경」등을 발표
1981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피선.
1983
5.16 민족문학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피선.
대한민국 예술원 원로회원 추대,
시집『패랭이꽃』간행, 장편소설 『사반의 십자가』불역판 출간.
1987
장편소설 「자유의 기수」를 제목으로 바꾸어 『자유의 역사』로 간행.
손소희(손귀숙)여사 별세.
1988
수필집『사랑의 샘은 곳마다 솟고』간행. 세번쩨 부인 서영은(서보영)과 결혼.
1990
소설가협회회장 피선.7월 30일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래 투병 시작.
1995
6월 17일 23시 23분 영면(永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