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도」「황토기」

일제 강점기부터 동리는 근대의 한계를 비판하고 나섰다. 「무녀도」에 나타나는 예수교와 샤머니즘의 대결은 이를 드러내는 방편이다. 샤머니즘의 무당은 화랑을 기원으로 한다. 그들은 하늘과 땅을 매개하며, 한이 있는 인간을 한이 없는 자연의 세계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그러니 시나위가락(神出曲)이 울리는 가운데 모화가 물 속으로 들어가는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자연으로의 귀화합일(歸化合一)’을 상징하는 셈이다. 여기서 예수교가 수용하지 못하는 샤머니즘의 정신이 빛을 발하기도 한다. 동리는 근대를 비판하면서 민족현실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삼엄한 상황 탓에 일제를 직접 비판할 수 없었지만, 설화 를 수용하여 현실을 환기시켰던 것이다.「황토기」의 ‘절맥설(絶脈說)’, ‘상룡설(傷龍說)’, ‘아기장수설화’는 비극적 인 조선의 상황을 암시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황토기

작품 초두에는 용이 등천의 기회를 놓치고 굴러 떨어져 흘린 피이며, 형르 찔러 맥이 끊어진 산이 흘린 피로 이루어졌다는 절맥설 및 상룡설의 황토골의 유래를 통해, 추락과 저주 및 거세의 함축적 의미를 제시한다.


이러한 전략과 저주 및 거세의 숙명을 배태하고 있는 황토골에서 억쇠와 득보라는 장사가 무모한, 그러나 필연적인 힘겨룸을 한다.


억쇠는 원래 황토골의 타고난 장사지만 장사가 나면 불길한 조짐이라는 마을 사람들의 속신과 아버지의 경고 때문에 좀처럼 힘을 써보지 못한채, 한번 힘을 제대로 쓸 날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허송한다.


분이의 주막에 술 마시는 것으로 소일하던 어느날, 그는 득보라는 또 다른 장사를 만나게 되며, 분이를 두고 싸울을 벌이게 된다.


그뒤 억쇠가 얌전한 설희를 집에 들여 앉히자 그녀에게 마음을 둔 득보는 다시 억쇠와 격렬한 싸움을 벌인다.


이를 질투하던 분이를 설희를 죽이고 득보마저 찌를채 달아나버지라 득보는 분이를 찾아 떠난다.

얼마 뒤 득보가 분이와의 사이에 낳은 딸만 데리고 돌아오자 이들은 이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큰 싸울을 위해 용냇가로 내려간다.


억쇠에게 있어 생의 유일한 의미가 되는 힘은 이겨도 져도 아무 보람이 없는 맹목적인 피흘림을 위해서 낭비 된다.


죽도록 싸워도 죽은 설희가 살아날 리 없고 달아난 분이가 올 리 없는 허망한 싸움이다.


억쇠와 득보의 싸움에게 허망하지만 자기 확인의 과정이다.

 

「역마」「달」


「문학이 정치의 도구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주장을 작품으로 검증하는 길은 무엇일까. 정치성이 배제된 세계에서 인간의 근원적 모습을 담아내는 일이 한 가지 방편이 되겠다. 해방기 동리 작품의 큰 축은 이러한 논리 위에서 구축되는데, 「역마」와「달」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역마」에서 부각되는 것은 운명과의 대결이다. ‘화개장터’라는 공간적 배경은 등장인물의 삶과 일치하면서 풍수지 리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주인공의 사주(四柱)도 운명의 조건이다. 「달」에서는 이루지 못하는 사랑을 죽음으로 완성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죽음의 장소가 물(자연)이라는 점에서 「무녀도」의 흔적이 느껴지기도 한다.
 

「실존무」「사반의 십자가」


인간은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다. 한 개인이 전쟁과도 같은 불가항력의 상황에 맞닥뜨리면 이러한 인식은 전면적 으로 불거진다. 동리는 전쟁을 배경으로 실존의 의미에 파고들었고,「실존무」는 그 대표적 작품이다. 화려한 이론이나 수사(修辭) 따위로 가 닿지 못하는 실존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다는 측면에서 당시 동리가 입은 커다란 상처를 가늠할 수 있다.

「사반의 십자가」는 영웅소설이 아니다.
이적을 행한다는 예수는 주인공에게 아무런 도움이 못 되며, 예지자는 틀린 점 괘를 내놓는가 하면 적에게 잡혀가기까지 한다. 이는 동리가 큰형 범부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동리는 동양학자인 범부를 『반신적(半神的) 인간』이라고 하여 공자, 인자로서의 예수와 같은 반열에서 파악했었다. 말하자면 범부로부터 신성을 제거하고자 하는 노력이 「사반의 십자가」에 나타난다는 것이다.「실존무」와「사반의 십자가」를 거치면서 동리는 자신의 세계를 우뚝하게 세워나갔다.

 

「늪」「까치소리」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동리는 이제껏 펼쳐왔던 문학세계를 종합적으로 보여주었다.
가령「을화」는 단편「무녀도」를 개작한 장편소설이며,「늪」은 인간의 세계와 선(仙)의 세계(수풀)사이에 놓인 도저한 죽음(늪)의 깊이를 다루고 있다.
선(仙)이란 자연(山)의 질서와 완전히 하나가 된 존재(人)이니 두 작품의 세계는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까치소리」에서 6.25를 매개로 벌어진 비참한 운명(팔자)과 맞서는 의지적 인간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이 인물은 패배하고 만다. 「늪」과 「까치소리」의 절망적 색채는 기억해 둘 만하다. 젊은 시절의 작품들과 달라진 점이기 때 문이다. 이 시기에 동리는 『김동리 역사소설』을 펴냈다.
육체의 고향이자 정신적 안식처였던 화랑의 세계를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주목을 요한다.

 

문학의 동반자


박목월이 문학의 길로 나아가는 데 있어 함께 한 중요한 문인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김동리, 정지용, 조지훈, 박두진 네 문인은 목월의 문학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 이다. 목월은 김동리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고독감을 달랬으며, 문학적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리고 목월은 정지용의 추천을 통해 본격적으로 문단에 입문한다. 또한 목월은 조지훈과 박두진을 만남으로써 자신의 문학적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김동리와의 만남

김동리는 박목월보다 세 살 위인 1913년생이다. 그리고 그는 대구 계성학교에 2학년까지 다니다 서울의 경신학교로 전학해 갔으니 목월의 중학교 선배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서울의 경신학교에 다니던 동리가 휴학을 하고 경주로 내려와 있던 1934년의 겨울방학 때였다.
목월이 계성학교를 졸업하던 그 해, 즉 1935년 1월 동리의 소설「화랑의 후예」가 『조선중앙일보』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이듬해 소설「산화」가 『동아일보』신춘 문예에 당선된다. 두 번이나 신춘문예에 당선된 친구 김동리의 존재는 목월에게 있어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서로가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상대역이 될 수 있다는 점이오, 다른 하나 는 문학적 성장의 촉발자의 구실을 하였다는 점이다.

 

정지용의 추천

정지용은 『문장』에 목월의 시「길처럼」과 「그것은 연륜이다」두 편을 첫 추천하 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등을 서로 대고 돌아앉아 눈물 없이 울고 싶은 리리스트를 처음 만나 뵈입니다 그려. 어쩌자고 이 험악한 세상에 애련측한 리리시즘을 타고나셨 습니까!” 정지용은 목월 시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이듬해 9월, 목월은 「가을 어스름」 과「연륜」이란 시로써 세 번째 추천을 받고 등단한다.

 

"북에 김소월이 있었거니 남에 박목월이가 날만하다. 소월의 툭툭 불거지는 삭주 구성조는 지금 읽어도 좋더니 목월이 못지 않아 아기자기섬세한 맛이 좋다..<중략>..요적 수사를 다분히 정리하고 나문 목월의 시가 바로 조선시다.
-정지용,「문장」1939.9

 

「청록집」간행


박목월은 청년문학가협회의 결성 준비 관계로 몇 번 서울 나들이를 하는 동안 여러 문 학인을 알게 된다. 해방 전까지 그가 알던 문학인은 윤석중, 김동리, 조지훈, 세 사람 정도였다. 『문장』의 추천 동기생인 박두진을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의 일이다. 3인 시집의 출판 을 처음 발의한 것은 조풍연이다. 목월의 시가 맨 앞으로 나온 것은 시가 짧고 가벼우 며 그만큼 순수하기 때문이다. 이 순서는 조지훈이 결정한 것이며 시집 제목을 『청록집』으로 하자고 주장한 것은 목월이었다. 푸른사슴이라는 것이 보다 참신하고 날렵하다는 은근한 자부심과 새롭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좌ㆍ우 대립 이 심화될 시기에 『청록집』이 나오자 반향이 컸다. 이러한 이유로 우익진영에서 저자의 한 사람인 목월의 시단 적 위치는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