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세계


“모화가 파우스트와 대체될 새로운 세기의 인간상이란 것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말한다면 모두들 비웃 을 것이다. 그러나 백년만 두고 봐라! 모든 것이 증명될 것이다! 역사가 증명해 줄 것이다!”

동리는 일찍부터 근대의 한계를 간파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근대 이후의 세계를 추구해 나아갔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은 여기에서 비롯하였다. 그러니 근대에 인간이 직면한 위기 앞에서 동리의 문학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이것이 「“역사가 증명해 줄 것이다!”」라는 장담이 아직도 유의미한 까닭이다.

 

작품 속의 경주


경주는 고조선 이후의 무속적 분위기에, 통일 신라의 불교가 접목되어 형성된 독특한 정신적 전통을 지니고 있다.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원천적 민족정신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이어져 경주 곳곳에 남아 있다.
김동리가 자라던 때, 경주는 신라 고도의 옛 분위기가 훼손되지 않은 그대 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토속적ㆍ무속적 분위기가 짙게 감도는 경주 의 분위기는 어린 시절 김동리의 내면적 정서의 기조를 이루었다.
김동리가 작품을 통해 신라문화와 신라혼에 대해 깊이 천착햤던 것은 자신 이 태어난 고장 경주가 한국 혼을 상징하는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자연과 민족의 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김동리에게 경주의 자연과 샤머니즘적 분위기는 그의 얼을 지탱해 주는 뿌리 구실을 했던 것이다.

 


동리의 시 세계


동리는 1934년 「백로」라는 시로 『조선일보』신춘문예에 입선하였다.
1백여 편의 시를 발표하였고, 시집으로는 「바위」「패랭이꽃」그리고 유고시집인 「김동리가 남긴 시」가 있다.
동리는 언어를 “태양(太陽(양))과 무주(巫呪(음))”으로 나누어 파악하였다. 전자가 소설에 닿아있다면 후자는 시장 르로 이어진다.「소설은 형상(形象)이요, 시는 영상(映像)이다. 소설은 육체를 갖춘 생명이요, 시는 육체를 거세한 영혼이다. 따라서 시는 영혼을 노래해야 한다.
사람의 혼을, 산천의 혼을…… 이것이 시의 가장 본질적인 의의요, 기본적 기능이다.」
이에 따라 동리의 시는 상당 부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이승과 저승 사이/ 외딴집 한 채, 그 속에/ 늙은 홀아비 혼자 산다.」 (「외딴집」4연 )는 동리의 시 세계를 상징 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라고 하겠다.
 

동리의 평론세계


동리의 평론은 두 가지 경향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대결의지로 충만해 있는 경우이다.
일제 강점기 유진오와 벌인 논쟁, 해방기 김병규ㆍ김동석과 벌인 논쟁이 여기에 해당한다.
여기서 근대 이후를 지향하는 동리의 논리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근대의 양면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며, 이에 따라 새로운 문명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휴머니즘’을 주장했다는 점이 빛을 발하고 있 다. 다른 하나는 인간과 산(자연)사이의 좁힐 수 없는 거리를 환기시키며 전개한 작품론들이다. 소설로 펼쳐 보였던 선(仙)이라든가 샤머니즘의 세계를 논리적으로 펼쳐낸 경우라고 말할 수 있다. 평생에 걸쳐 꾸준히 매달렸던 세계였 던 만큼 상당한 수준의 비평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작품세계


박목월은 1939년에 등단해서 1978년 타계할 때까지 다섯 권의 개인 창작 시집과 한 권의 합동 시집을 남겼다.
초기 시집은 『청록집』(3인 합동 시집) 『산도화』에서 그는 동심의 소박성, 민요품, 향토성 등이 조화를 이룬 자연 친화적인 짧은 서정시를 발표했으며,
1950년대 이후 『난ㆍ기타』『청담』에서는 삶의 일상을 제재로 한 인간 지향적 시편들을 노래하였다.
또한 후기작인 『경상도의 가랑잎』『무순』등에서는 향토회귀와 함께 존재에 대한 깊은 인식을 드러내는 시 세계 를 보여준다.

『청록집』(1946, 조지훈, 박두진과의 3인 시집)
『산도화』(1955) 『난ㆍ기타』(1959) 『청담』(1964),
『경상도의 가랑잎』(1968) 『무순』(1976)
『크고 부드러운 손』(1979, 유고신앙시집)

 

시의 배경, 경주

경주를 시로 형상화한 작품은 주로 초기 시에 나타난다. 즉 초기 시집『산도화』와 『난ㆍ기타』에 대부분의 작품이 실려 있다. 목월의 초기 시는 ‘자연’과 ‘향토적 정서’를 특색으로 하고 있다. 목월의 초기 시에 나타난 ‘향토적 정서’는 고향 경주의 문화재와 자연환경을 통해 형상화된다. 목월은 산문 「나와 청록집 시절」에서 당시의 심정을 회상한다.
“나는 늘 혼자였다. 사무가 끝나면 거리로 나왔다. 거리랬자 5분만 거닐면 거닐 곳이 없었다. 반월성으로, 오릉으로, 남산으로, 분황사로 돌아다녔다. 실로 내가 벗할 것이란 황폐한 고도의 산천과 하늘뿐이었다.”
이 태어난 고장 경주가 한국 혼을 상징하는 공간이기 때문이었다.


 

동시의 세계

1933년 봄, 박목월은 잡지『어린이』에「통딱딱 통짝짝」을 발표 한다. 그 해 6월에는『신가정』에「제비맞이」가 당선되면서 본격 적인 동시 창작을 시작한다.
1946년 4월, 조선청년문학가협회의 아동부원으로, 그리고 조선아동 회의 기관지『아동』창간을 주재하는 등 해방 후 아동문단 형성에 진력하였다.
또한 동시집『동시집』(1946)『초록별』(1946) 『호랑나비』(1946)
『산새알 물새알』등의 창작동시와 동화집『눈이 큰 아이』(1978)
를 간행하는 등 지속적으로 창작 활동을 한다.

그의 동시들은 유년지향의 시, 생명지향의 시, 향수의 시, 동시 언어의 확대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