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총
생몰년 미상

신라 중대의 대학자

원효의 아들로 유학을 깊이 연구하여 유학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두문자를 집대성하여 현학늬 발전에 공헌하였다. 신문왕 때 화왕계를 지어 왕에게 충고 하였따.

 
강수
?~692

통일신라의 유학자이자 이름난 문장가

6두품 출신이라는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고 무열왕의 총애를 받아 신라의 유교정치 이념이 확립되는데 기여하였다. 태종무열왕이 즉위할때 당나라의 외교문서를 손쉽게 풀이 함으로써 그 학식을인정받아 이후 각종 외교 문서를 작성하여 삼국 통일에 기여하였다.

 
김대문
생몰년미상

진골귀촉 출신의 학자이자 저술가

704년 한산주도독을 지냈다. 저서로 [계림잡전],[고승전],[화랑세기],[한산기],[악본]등이 있으나, 모두 전하지 않는다. 저서의 일부 내용이 [삼국사기], [삼국유사]등에 전하여 신라 중대 사회의 진골귀족 세력을 대변하였다.

 
최치원
857~?

신라 말의 대유학자

당에서 유학하며 과거에 급제하여 이름을 떨쳤다. 당에서 지은 토황소 격문은 명문장으로 유명하다. 885년 귀국, 관직에 있으면서 시무책 10여 조를 올려 망해가는 신라를 되살리려 노력하였다. 그 후 관직을 내놓고 난세를 비관, 각지를 유랑하다가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 저술로는 [계원필경집]과 4개의 비문등이 현재까지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