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 미상
통일신라시대의 화가
황룡사벽에 노송도에 새들이 앉으려다가 부딪혀 떨어졌다는 일화가 있다. 분황사 관음보살상 등을 그렸다.
?~692
신라 선덕여왕 떄의 승려이자 조각가
그의 작품은 영묘사의 장륙삼존상과 사천왕사의 팔부신장상등이 있으며, 흥륜사·법림사의 사액을 썼다고 한다. 석장사에 기거하며 벽돌에 삼천불을 새겨 봉안하였다.
생몰년미상
신라 자비왕 때 거문과 명인
몹시 가난하여 누더기 옷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백결(백번을 기웠다는 뜻)선생이라 불렸다. 어느 해 세모에 떡방아 소리가 집집마다 울리는 것을 듣고 부인이 가난을 근심하자 거문고로 방앗공이 소리를 내어 위로 하였는데, 그 곡조가 후세에 전하여 대악이란 이름이 붙었다.
711~791
신라의 명필
예서·행서·초서에 능하여 '해동의 서성'이라 불렸고, 송나라에서도 왕희지에 비견하는 명필로 이름 났다. 그의 필적은 유일한 서첩 [전유암산가서]와에 [여산폭포시] 경복궁 내에 있는 낭공대사비에 전한다.
생몰년미상
향가와 대금의 달인
향가문학이 꽃피었던 8세기 경덕왕 시절, 승려이며 화랑이었던 월명사는 하늘에 두 개의 해가 뜬 재앙을 물리치고자 도솔가를 짓고, 일찍 죽은 누이를 위해 제망매가를 노래했다. 그는 대금의 달인으로 사천왕사에 머물렀는데 달 밝은 밤 절 앞 큰길에서 대금을 불면 하늘의 달조차 가던 길을 멈추었기에 그 곳을 월명리라 하고 스님을 월명사라 불렀다고 한다.
제망매가
죽고 사는 길은 / 여기 있음에 두려워 하고
'나는 갑니다' 말도 / 못다 이르고 가는 것 입니까?
어느가을 이른 바람에 /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 같이
한 가지에 나고는 / 가는 곳을 모르는 구나
아으 미타찰에 만날 내 / 도 닦아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