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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 스크랩>

관리자 | 2018.09.19 | 조회 399

경주에 흐르는 문학의 향기…향가·설화부터 현대작품까지 짚어볼까    

                                        

                                                                                 

                                                                                
                                                                                
                                                                                

목월문학관에 그의 일대기와 작품, 원고, 시집 등이 전시되고 있다.<br>

                                                                                

 

                                                                                

 

                                        
목월문학관에 그의 일대기와 작품, 원고, 시집 등이 전시되고 있다.

                                        

 

                                        


                                    

                                        
                                        
                                        

동리목월문학관에서는 다양한 문화예술행사가 진행된다.<br> 엄마와 함께하는 문학행사 모습.

                                        

 

                                        

 

                                        
동리목월문학관에서는 다양한 문화예술행사가 진행된다.
                                     엄마와 함께하는 문학행사 모습.

경주는 문학의 고장이다.
우리나라 문학의 뿌리가 경주라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현대문학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향가와 설화가 경주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수긍이 간다.
신라시대와 고려, 조선시대로 이어지면서 경주지역에서 두드러진 문인이자 학자들이 대거 배출됐다.

현대문학계에서도 우리나라 문학은 물론 세계적인 문인으로 주목받는 동리, 목월 선생이 경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두 거장의 작품세계 배경에 경주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눈여겨 살펴보면, 금방 드러난다.

이러한 맥락에서 경주시는 진천동 불국사 앞에 ‘동리목월문학관’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문학관에는 동리, 목월 선생의 이력과 문학활동,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 각각 별실로 마련돼 있다.

경주가 신라 천 년의 터전임을 상기시키는 ‘신라를 빛낸 인물관’도 문학관과 함께 건립되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 문학관에서는 경주시와 문인단체가 백일장을 비롯해 아카데미, 문학특강 등의 다양한 문화예술행사를 진행하면서 시민들은 물론 관광객들의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신라를 빛낸 인물들

신라를 빛낸 인물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흥륜사 금당에 배치된 고승들 모습.

 

 

신라를 빛낸 인물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흥륜사 금당에 배치된 고승들 모습.

신라를 빛낸 인물관에 전문 문화해설사가 상주하면서 전시된 인물들을 역사와 함께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br>

 

 

신라를 빛낸 인물관에 전문 문화해설사가 상주하면서 전시된 인물들을 역사와 함께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동리목월문학관에 들어서면, 정면에 문학관의 건물이 한옥형으로 지어져 있다.
넓은 광장을 사이에 두고 ‘신라를 빛낸 인물관’이 별관으로 서 있다.

신라를 빛낸 인물관에는 말 그대로 신라를 신라답게 발전시키는 데 두드러진 역할을 한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스님, 왕, 재상, 충신, 장군, 화랑, 학자, 예술가, 효행을 실천한 인물들을 분야별로 몇 분씩 소개하고 있다.

인물관에 들어서면 놀랍게도 ‘흥륜사 신라십성’이 전체 전시관의 절반을 차지하면서 10명의 스님 인영을 간단한 약력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흥륜사 신라십성’은 신라 최초의 사찰인 흥륜사 금당에 모신 신라의 대표적인 고승 열 명이다.
불교 전래로부터 혜공왕 이전까지 신라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스님들을 선정해 안치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라에 불교를 전래한 인물로 알려진 아도화상이 처음에 소개되고, 불교를 신라 국교로 지정하게 하며 순교한 이차돈, 선덕여왕 때의 고승으로 왕의 부름까지 뿌리치고 귀족불교의 테두리를 벗어나 교화에 힘썼던 혜숙, 왕명을 받고 중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안함이 있다.
그리고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부석사를 짓고 전국에 10여 개의 화엄종 사찰을 지은 의상, 경덕왕 때 불국사 주지 표훈, 신라 대중적 불교를 전파한 사파, 불교대중화의 선구자이자 불교사상의 융합과 그 실천에 앞장섰던 원효도 근엄한 모습이다.
문무왕 때의 고승으로 기행(奇行)을 일삼았던 혜공, 진골 출신으로 당나라에 유학하고 황룡사9층목탑 건립 등으로 신라 불교 부흥에 큰 역할을 했던 자장이 마지막으로 소개된다.

또한 원광법사의 세속오계를 소개하고, 신라의 불교 발전사를 간략하게 소개하는 코너도 있다.
이어 신라왕경도가 당시 모습을 추정해 그린 지도와 신라의 연표가 한눈에 들어온다.

신라의 왕은 시조 박혁거세와 탈해왕, 미추왕을 소개하면서 박, 석, 김씨의 시조가 되기도 한 세분의 왕들을 소개한다.
이어 법흥왕, 경덕왕, 신문왕, 문무왕, 무열왕, 진흥왕 등 6명의 치적을 소개해 모두 9명의 왕을 대표적으로 전하고 있다.
신라를 이끌었던 56명의 왕에 비하면 매우 인색한 편이다.

훌륭한 재상은 거칠부와 김대성, 김양을 소개하고, 충신은 죽어서도 왕에게 충언을 간한 김후직, 말갈족의 침략에 홀로 맞서 싸우다 적의 화살을 고슴도치처럼 맞고 쓰러진 장수 소나를 소개하고 있다.

장군은 가야 왕족 출신으로 태대각간까지 오른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 장군과 울릉도를 복속시킨 이사부, 금관가야 구형왕의 아들로 전쟁에서 백제의 성왕을 죽이고 승리한 무력 장군, 당나라 병사를 크게 무찌른 문무왕 때의 당천 장군이 활약상과 함께 기록돼 있다.

화랑소개는 사다함과 관창이 있고, 유명한 학자는 설총과 강수, 김대문, 최치원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날아가는 새들이 앉으려 했다는 황룡사의 노송도를 그린 솔거, 선덕여왕 때의 승려이자 조각가 양지, 거문고의 명인 백결선생, 신라의 명필 김생, 경덕왕 때 화랑이자 승려로 향가와 대금의 달인으로 불리는 월명사 이야기도 전한다.
그리고 신라의 대표적인 효녀 지은, 유명한 효자 손순과 향덕의 효행이 인물관의 마지막 코너를 장식하고 있다.

인물관은 흥륜사 신라십성과 9명의 왕을 비롯해 42명의 인물을 신라를 빛낸 인물로 소개하면서 신라의 역사를 한눈에 읽을 수 있다.
동리목월문학관보다 방문객들의 발걸음을 오래 붙잡아 두는 마력이 있다.


◆동리문학관

동리와 목월문학관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이하는 흉상.

 

 

동리와 목월문학관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이하는 흉상.

 

동리문학관에 그의 작품 ‘황토기’를 애니메이션으로 상영하고 있다.<br>

 

 

 

동리문학관에 그의 작품 ‘황토기’를 애니메이션으로 상영하고 있다.

 

문학관 안으로 들어서면 왼쪽이 동리문학관이다.
동리와 목월은 경주에서 나고 자란 문성이지만, 동리가 목월보다 두 살 위여서 경주지역의 행사장 등에서도 늘 먼저 소개되고 있다.

동리문학관에는 정면에 그의 흉상이 갈색 중년의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오른쪽 입구에 동리선생의 탄생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연대기와 작품활동, 생활상을 소개한다.
이어 오른쪽에서 길게 전시관이 이어지면서 김동리의 일대기와 문학활동을 연대별로 소개하는 사진과 안내글이 유품과 함께 진열돼 있다.

김동리는 1913년 일제강점기에 경주시 성건동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42세에 낳은 막내였다.
그는 10~20세에 이르는 청소년기 때 맏형의 서가에 꽂힌 책들을 읽으며 풍부한 지식을 쌓았다.
또 철도원에 근무하는 친척 형의 도움을 받아 장서를 읽었다.
동리는 “무엇을 읽든 나는 자신이 쓴 것처럼 이해할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술회했다.

동리 선생은 대구 계성학교에서 2년을 수료하고, 서울 경신학교 3학년에 편입해 공부하면서 1929년 중외일보에 시와 수필 등을 발표해 문학도로서의 자질을 선보였다.
그는 19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기도 했다.
같은 해 소설 ‘화랑의 후예’가 조선일보에, 이듬해 ‘산화’가 동아일보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집필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30∼35세 때에는 작품을 통해 민족의식, 한국의 얼을 형상화하는 데 주력했다.
친일단체인 문인보국회와 국민문화연맹으로부터 가입통지서가 날아왔지만, 불살라버리고 가입하지 않았다.

해방을 맞은 35~40세 당시에 상경해 서정주, 유치환,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등과 함께 청년문학가협회를 만들어 창작의 자유를 지키는 일에 앞장섰다.
이때 ‘혈거부족’, ‘황토기’, ‘지연기’ 등의 작품들이 탄생했다.

동리는 50세 이후에는 후학을 가르치는데 열중했다.
서라벌예술대 6회 졸업생 전원이 그의 영향을 받아 문단에 진출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예술대에 이어 서울대, 고려대, 중앙대 등 강단에서 가르친 세월이 30년이 넘었다.
그의 제자 중에도 현역 작가들이 100여 명을 넘는다.

그는 가르치는 일에 이어 사회단체 활동도 적극적이었다.
33세에 사천청년회장을 시작으로 한국청년문학가협회장, 한국문총 사무국장, 문교부 예술위원, 중앙대 예술대학장, 한국소설가협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한일문화교류협회 회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등을 역임했다.

58세 이후에는 시와 서예의 명상세계로 진출해 서예삼매경에 빠졌다.
“문장을 쓸 때는 고통스러운데, 글씨를 쓰는 것은 즐겁다”고 까지 했다.

문학관 내부에는 그의 창작공간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고, 소설 ‘황토기’를 애니메이션으로 상영하는 영상관이 있어 눈길을 끈다.
또 경주 금장대가 무대로 등장하는 ‘무녀도’의 줄거리와 배경을 조형물로 설치해 소개하고 있다.

동리의 소설 ‘을화’는 노벨문학상 본선까지 진출하면서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문학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90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생활을 이어가다 1995년 83세의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국민시인 목월


문학관에 설치된 동리와 목월의 생전 집필하던 공간. (위쪽이 동리의 집필방)

 

 

 

문학관에 설치된 동리와 목월의 생전 집필하던 공간. (위쪽이 동리의 집필방)

 

박목월은 ‘나그네’, ‘윤사월’, ‘청노루’, ‘산도화’ 등의 감칠맛 나는 시를 써 국민들이 애송하는 국민시인이다.
목월의 본명은 영종으로, 1915년 경주 서면 모량리에서 태어나 건천초등학교를 다녔다.
동리 선생과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에 대구 계성중학교를 졸업했다.

목월문학관은 동리문학관 맞은편에 같은 규모의 비슷한 유형으로 전개되고 있다.
목월문학관으로 들어서면 역시 정면에 갈색의 멋스런 중년 신사의 흉상이 서 있다.
입구에는 그의 출생에서부터 1978년 64세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연보가 소개된다.
우측으로 동선을 따라가면, 먼저 그의 시 ‘왕릉’, ‘불국사’, ‘토함산’, ‘청운교’ 등이 스크린으로 소개된다.

이어 그의 경주에서 보낸 유년시절과 청년기 문학활동, 작품과 시집 소개와 함께 그의 창작실이 생전에 사용하던 모습 그대로 꾸며져 있다.
목월의 아름다운 시구(詩句)가 구수한 음성으로 낭송되는 등 낭만스런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청소년들은 문학도의 꿈을 꾸기도 한다.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요약도 눈길을 끈다.
목월은 고향 선배인 동리의 잇따른 신춘문예 당선에 영향을 받아 창작활동에 집중하게 된다.
1933년 문장지에 ‘산그늘’, ‘가을 어스름’ 등이 추천되면서 시인으로 등단해 본격적인 시작(詩作)활동을 전개한다.
1946년 조지훈, 박두진 등과 함께 시집 ‘청록집’을 내면서 청록파 시인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그의 창작활동이 절정에 이르면서 정지용 시인은 “북에는 소월, 남에는 목월”이라 칭송했다.

박목월의 시 세계는 맑고 평화로운 자연 속에서 잃어버린 고향을 찾는 순수한 정서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그의 시는 초기와 중기, 후기로 나누어진다.
초기 때는 자연과의 교감과 향토적인 정서를 배경으로 고향을 노래한다.
중기와 후기의 시는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시의 소재를 찾아, 삶과 죽음의 허무함을 현실적 자연과 교감하여 시적 아름다움으로 승화하거나 문명비평적인 관점에서 형상화하면서도 압축된 아름다움을 보였다.

한양대 교수,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한 목월은 향토적 서정시인으로 국민의 추앙을 받는 영원한 국민시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동리목월문학관에서는 백일장, 문학아카데미, 문학특강 등의 문화예술을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면서 힐링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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